(1) 일본의 조선 침략과정




1.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일본을 통일하고 남아도는 힘, 군사력 등을 소진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략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임진왜란이며 7년동안이나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어 놓게 됩니다. (참조 : 나무위키 임진왜란 )

기타 주장 - 어떤 이상한놈의 이간질 덕분에 시작되었다는 주장
일본의 대마도 군수가 악의는 없었지만(?) 정보를 조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간질을 시켜버렸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 라고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본에는 조선이 싹싹빌고 복종을 맹세하였다고 보고를 올리고,

조선에는 조선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고 다시는 건드리지 않겠다.

라는 식으로 보고하고 양쪽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받아먹을 것들을 챙겼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을 자기들 휘하의 막부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거죠.

일본 입장에서는 그 이후 명을 치기 위해 길을 비켜달라고 했을 때 조선이 거부하는 것은 주군을 배반한 하부 휘하 조직쯤 되었기 때문에, 말살시켜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고,

조선 입장에서는 웬 미친 놈들이 군대끌고 조용히 지나가겠다는 말을 믿는다는게 가능하겠냐는 것이 된 것이죠.

뭐 일본 학계 내의 주장이라고는 하지만,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2.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조선과 일본은 화해를 하게 되며 일본은 다시 조선의 문화와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입니다.

3. 근대 이후 일본에서는 뜬금없이 ‘정한론’이 대두됩니다. 단어 그대로 한반도를 무력으로 정벌하여 일본의 국력을 배양하자는 주장. 좁게는 메이지 6년의 정변 일련 과정을 뜻하며 넓게는 에도 막부 이래 일본에서 나타난 조선멸시사상과 막말유신초의 무력으로 조선 정벌하는 주장을 말하며 그 당시의 여론상 큰 호응을 얻고 실행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참조 : 나무위키 정한론 : https://namu.wiki/w/%EC%A0%95%ED%95%9C%EB%A1%A0 )

4. 일본은 정한론에 의해서 강화도 앞바다에서 운요호 사건을 일으킵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근대식 초기 함정을 가지고 불법 접근하여 조선 수군을 개박살 낸 다음, 마음껏 민간인을 학살한 이후에 이를 빌미로 여러가지 요구를 하게 됩니다.

(참조 : 나무위키 운요호 사건 : https://namu.wiki/w/%EC%9A%B4%EC%9A%94%ED%98%B8%20%EC%82%AC%EA%B1%B4 )

5. 이때 체결된 조약이 ‘강화도 조약’인데, 요약하면 제물포와 원산 두 항구를 개항하고 이 항구에는…. 음… 요즘말로 하자면, 무비자 입국이 누구나 가능하며 한일 FTA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관세따위는 없으니까 마음껏 장사하라는 내용이 주가 됩니다. 당연히 세금도 없지요. 따라서, 일본의 영향력이 점점 조선에 커지게 되면서 기존에 영향력을 발휘하던 청나라와 상당한 마찰을 겪게 됩니다. ( 하지만, 사실 운요호사건때 이미 청나라는 조선의 도움을 거부한 상황이었습니다 )

(참조 : 나무위키 강화도 조약 : https://namu.wiki/w/%EA%B0%95%ED%99%94%EB%8F%84%20%EC%A1%B0%EC%95%BD)

6. 게다가 당시에는 명성황후 vs 흥선대원군(명성황후의 시아버지 -_-!!, 즉 고종의 아버지)의 갈등 구도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식군인과 구식군인의 차별대우로 인한 갈등이 폭발하며 구식군인들이 주축이 된 임오군란이 발생하고 난의 주동자들은 흥선대원군을 정계, 즉 권력을 중심에다 모셔 놓게 됩니다. 위험에 빠진 명성황후는 청나라에 지원을 요청하게 되고, 청나라에서는 구실을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만세를 부르며 군대를 출동시켜 흥선대원군을 중국으로 납치하게 됩니다…. -_-

따라서, 명성황후는 다시 정계의 중심으로 복귀하게 되지요.

(참조 : 나무위키 임오군란 : https://namu.wiki/w/%EC%9E%84%EC%98%A4%EA%B5%B0%EB%9E%80 )

7.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임오군란으로 자국 공사관과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된 일본은 조선에 즉각적인 배상책임과 보상을 요청하게 되었고 결국 조선은 일본과 ‘제물포 조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모든 손해배상을 토해내게 됩니다. 또한, 이 조약의 골자는 일본 공사관에 일본 군대의 유치를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참조 : 나무위키 제물포 조약 : https://namu.wiki/w/%EC%A0%9C%EB%AC%BC%ED%8F%AC%20%EC%A1%B0%EC%95%BD )

8. 이후 1884년에 갑신정변이 일어납니다. 급진개화파가 조선의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지만, 하필이면 일본을 끌여들여 일을 진행하였고, 명성황후가 이를 눈치채고 청에 다시 도움을 요청하여 3일만에 그 천하를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의 영향으로 청나라의 조선에 대한 입지가 상당히 강화되고 청나라에서도 조선의 속국화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참조 : 나무위키 갑신정변 : https://namu.wiki/w/%EA%B0%91%EC%8B%A0%EC%A0%95%EB%B3%80 )

9. 한편, 갑신정변의 실패로 청나라와 조선, 그리고 일본이 ‘톈진조약’을 맺게 되는데 어중간한 조약이라 나중에 청일 전쟁의 빌미가 됩니다.

조약의 골자는, ‘한쪽이 군대를 파병하면 나머지 한쪽도 군대를 파병할 수 있다’ 라는 내용 입니다만, 우열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의 조약이라는게 문제가 됩니다.

(1) 청과 일본은 조선 반도에서 즉시 철수를 시작해 4개월 안에 철수를 완료한다.

(2) 청일 양국은 조선에 대해 군사고문을 파견하지 않는다. 조선은 청일양국이 아닌 제 3국에서 1명 이상 수명의 군인을 초치한다.

(3) 장래 조선에 출병할 경우 상호 통지 한다. 파병이 불가피할 경우에도 속히 철수시켜 주둔하지 않는다.

(참조 : 위키백과 톈진조약 : https://ko.wikipedia.org/wiki/%ED%86%88%EC%A7%84_%EC%A1%B0%EC%95%BD_(1885%EB%85%84)

10. 시간이 흘러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실 시작은 농민운동이지만, 정치적인 성향이 합쳐지면서 기념비적인 운동이 되어버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농민군은 전주성을 함락시키는데 성공하고, 놀란 조정은… 수도방위군을 파견하여 난을 진압하는 대신, 청나라에 다시 손을 벌려 제압을 요청합니다…. 청나라는 얼씨구나 하고 군대를 파병하게 되고 이를 알아챈 일본 역시 얼씨구나 하며 군대를 한반도에 파견하게 되는 빌미를 만들어 버립니다.

(Ps…. 아무리 역사를 봐도…. 남의 손을 빌려 만든 업적은 자기게 아니더군요…. 제가 생각하는 희대의 병크중에 하나라 생각합니다 )

(참조 : 나무위키 동학농민운동 : https://namu.wiki/w/%EB%8F%99%ED%95%99%20%EB%86%8D%EB%AF%BC%20%EC%9A%B4%EB%8F%99 )

11.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동학군은 조정과 전주 화약( 和約 )을 맺고 자진 해산을 해버립니다. 동학군은 반 외세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외세에 빌미를 줄까봐 두려워 했고, 또 마침 농번기가 왔기 때문에 ‘흥선대원군 불러주시고 탐관오리 잡아 족쳐주시면 알아서 해산하겠습니다’라고 관군에 안을 내 놓았는데 이를 관군이 수용하면서 모내기를 하러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조 : 나무위키 전주 화약 : https://namu.wiki/w/%EC%A0%84%EC%A3%BC%20%ED%99%94%EC%95%BD )

12. 모든 일이 정리되고 나서 청군과 일본군에게 조정은 ‘일이 마무리 되었는데 돌아가 주세요’라고 하지만, 나름대로의 속내를 가지고 있던 일본군은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내정에 간섭을 하게 됩니다. 그 중 가장 결정적인 일은 ‘갑오개혁’을 강요하다가 결국 짜증이 났는지, 군대를 이용한 무력으로 경복궁을 점령해버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갑오개혁을 강행하게 되고 곧 이어 청과의 전쟁. 즉, 청일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갑오개혁의 주요 골자입니다. 사실 갑오개혁은 군대, 정치, 사회, 법률 등 여러면의 다각적인 개혁이지만, 주요 골자는 ‘청의 속국인 조선을 독립국으로 해방시켜 일본의 비호 아래 홀로 설 수 있게 해 주겠다’ 라는 것입니다. (갑자기 속국으로 명명해버립니다)

언듯보면 듣기 좋은 말이기에 당시 지식인의 열렬한 환영도 받았다고 하지만, 사실 이는 나중을 위한 포석이며 달콤한 독소조항이었습니다.

(참조 : 나무위키 갑오개혁 : https://namu.wiki/w/%EA%B0%91%EC%98%A4%EA%B0%9C%ED%98%81 )

13. 갑오개혁이 진행되면서 일본이 가장 중요시 한 일은 청의 간섭을 끊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 당시의 내각이 이에 호응하게 되면서 서양의 내정간섭 및 청국의 무력개입을 막는다는 명분과 동시에 그를 일본에 돕고 조선은 일본에 협력한다는 ‘대일본-대조선양국맹약’을 맺게 됩니다. 그를 통하여 조선내 일본군의 활동이 매우 자유로이 이용될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하게 되면서, 이제 이를 시작으로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참조 : 나무위키 청일전쟁 : https://namu.wiki/w/%EC%B2%AD%EC%9D%BC%EC%A0%84%EC%9F%81 )

14. 청일전쟁은 청나라가 개박살이 나며 ( 사실 병크를 몇개 저지른 이유도 있음 ) 일본의 승리로 끝이나고 이에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으며 조선의 실질적인 지배국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으며 지배력이 어마어마하게 강해집니다.

또한, 청나라는 이 조약으로 인해 막대한 전쟁보상금을 일본에 지급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7년. 고종은 무력으로는 도저히 답이 안나옴을 느끼고 외교적인 해결을 위한 과정으로 대한제국을 선포하게 됩니다.

(참조 : 나무위키 시모노세키 조약 : https://namu.wiki/w/%EC%8B%9C%EB%AA%A8%EB%85%B8%EC%84%B8%ED%82%A4%20%EC%A1%B0%EC%95%BD )

(참조 : 나무위키 대한제국 : https://namu.wiki/w/%EB%8C%80%ED%95%9C%EC%A0%9C%EA%B5%AD )

15. 을미사변 – 명성황후 시해사건

한편 러시아는 일본이 급격히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자 프랑스, 독일과 합세하여 삼국간섭을 통해 일본이 먹은 요동반도를 도로 토해내도록 압력을 넣습니다. 이에 고종과 명성왕후 부부는 러시아의 존재에 대해 매우 주목하게 되었고 러시아 공사 베베르를 수시로 불러서 러시아 정부와 외교적 접촉을 가집니다. 어쨌거나 이노우에 가오루는 고종과 명성황후가 대놓고 자신을 괄시하며 일본에게서 거리를 두는 것을 포착하고 자신의 후임 공사로 무장 출신의 미우라 고로를 추천하며 그와 1달간 같이 생활하며 모종의 음모를 꾸미게 된는데, 그게 바로 을미사변입니다. 이 때의 행보는 참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 것이,

(1) 을미사변이란 사건 자체는 명성황후를 죽이고 일시적으로 조선에 친일내각을 세우는데 성공했지만

(2) 고종이 일본과 완전히 척을 지고 춘생문 사건과 아관파천을 통해 미국과 러시아에 매우 노골적인 러브콜을 보내는 계기가 되어 결국 잠깐 들어선 친일 내각은 전멸당하고 조선의 친일파 세력은 일시적으로 일소되어버립니다.

(3)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지면서 결국은 일본이 조선을 완전히 장악하게 됐고 일본을 막을 여건이 되는 영국과 미국은 오히려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한 상황이었으니… 모든것이 다 끝나고 맙니다.

(참조 : 나무위키 을미사변 : https://namu.wiki/w/%EC%9D%84%EB%AF%B8%EC%82%AC%EB%B3%80 )

(참조 : 나무위키 춘생문 사건 : https://namu.wiki/w/%EC%B6%98%EC%83%9D%EB%AC%B8%20%EC%82%AC%EA%B1%B4 )

(참조 : 나무위키 아관파천 : https://namu.wiki/w/%EC%95%84%EA%B4%80%ED%8C%8C%EC%B2%9C )

16. 이렇게 일본이 극동 아시아에서 세력을 키우고 영향력을 뻗어나가자 러시아 역시 일본을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초반에는 조선에서 요청한 도움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일본과 경쟁하듯이 단물빼먹기를 하게 되지만, 최종적으로는 38선 분할통치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됩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이미 일본은 러시아의 전력파악을 완료하고 전쟁을 한판 할 준비까지 마쳐놓습니다.

결국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Ps. ” 나는 우리가 조선을 차지하는 걸 원하지는 않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차지하도록 놔둘 생각도 없소. 그건 전쟁의 원인이 될 것이오.”

– 니콜라이 2세 1901. 프로이센의 알베르트 빌헬름 하인리히에게 (Christopher Clark, The Sleepwalkers: 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 p. 176)

(참조 : 나무위키 러일전쟁 : https://namu.wiki/w/%EB%9F%AC%EC%9D%BC%EC%A0%84%EC%9F%81 )

17. 모두 다 러시아가 승리할 것으로 믿었었지만, 일본이 선전포고 없는 선제공격을 시작으로 어찌어찌 러시아를 격파해버리면서 조선의 지배권은 완전히 일본으로 확정됩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05년 을사오적과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을사조약(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조선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게 된다.

(참조 : 나무위키 을사조약 : https://namu.wiki/w/%EC%9D%84%EC%82%AC%EC%A1%B0%EC%95%BD )

(참조 : 나무위키 을사오적 : https://namu.wiki/w/%EC%9D%84%EC%82%AC%EC%98%A4%EC%A0%81 )

18. 이후 1910년 한일합방. 즉, 경술국치를 통하여 조선은 만 35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버립니다.

(참조 : 나무위키 경술국치 : https://namu.wiki/w/%EA%B2%BD%EC%88%A0%EA%B5%AD%EC%B9%98 )

Comments

comments

error: Content is protected !!